성장기 학생들을 보며 생활 리듬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하던 시절, 밤이 깊어질수록 복도는 오히려 더 바빠졌습니다. 교실 문이 열리면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 한 모금을 급하게 마신 뒤 다시 다른 교실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매일 보다 보니 아이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들었던 것이 있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하루를 참 길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지쳐 있던 아이들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품을 참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책을 펴놓고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거나,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책상에 엎드리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가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간 아이들은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반대로 교실에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밝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의자에 앉을 때도 몸이 축 처지지 않았습니다. 성격 차이도 있었겠지만,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교적 잠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이 일정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포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 차이

김포 신도시에서 성장기 학생들을 만나던 때도 비슷했습니다. 학교가 끝난 뒤 바로 오는 아이와 여러 학원을 돌고 늦게 오는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부터 조금 달랐습니다.

해가 지고 상가 간판에 불이 켜질 무렵이면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물어봐도 짧게 대답하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서둘러 무언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물을 한 잔 마시게 하고, 굳어 있던 어깨와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게 했습니다. 잠깐 시간이 지나면 아이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고, 그제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한두 마디 꺼내기도 했습니다.

그 작은 변화를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쓰였습니다. 몸이 특별히 약해서라기보다 하루가 너무 빡빡해서 힘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하루

예전에는 의자에 비뚤게 앉거나 한쪽으로 기대는 모습을 보면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학생을 몇 달씩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잠이 부족한 날에는 몸을 바르게 세우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식사를 거르고 온 날에는 금방 지쳤고, 시험 기간처럼 생활 시간이 들쭉날쭉해지면 평소보다 표정도 어두워졌습니다.

반대로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아침을 챙겨 먹는 아이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비교적 편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슨 특별한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하루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생활이 몸에 남기는 흔적”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오래 앉아 있는 자세만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몇 시에 잠들고 어떤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의 한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상담을 오신 부모님들은 처음에는 공부 방법이나 집중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대화가 조금 길어지면 조심스럽게 다른 말을 꺼내셨습니다.

“요즘 아침에 잘 못 일어나요.”

“밤에 누워서도 한참 뒤척여요.”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자꾸 대충 먹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성적표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하루를 버텨낼 힘이 남아 있는지, 잠깐이라도 편하게 쉬는 시간이 있는지, 집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먼저 봐야 했습니다.

마라톤 봉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달리는 사람들은 힘들 때 자세가 흐트러지고 표정이 굳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더 뛰라는 말이 아니라 물을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장기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도 저녁 무렵 학원가를 지나면 형광등 아래에서 가방끈을 다시 고쳐 메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아이들의 하루를 받쳐주던 것은 거창한 비법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잠깐이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이었습니다.

복도 끝에서 잠시 벽에 기대어 쉬던 한 학생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 문제를 더 푸는 시간이 아니라,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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