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의외로 가장 힘들어하던 생활 패턴 이야기

“선생님, 오늘은 그냥 조금만 쉬면 안 돼요?”

평소 말이 많던 학생이 그렇게 말한 날이 있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는데, 아이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책상에 팔을 올리고 잠깐 고개를 묻었습니다. 어디가 아프다는 말도 없었고,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루가 너무 길었던 얼굴이었습니다.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가까이 보던 시절에는 이런 모습을 자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어려운 공부나 많은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보다 보니, 문제집보다 먼저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생활의 흐름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도 웃을 힘이 없던 날

밤이 깊어지면 학원 복도는 낮과 전혀 다른 곳처럼 변했습니다. 교실 안 형광등은 여전히 밝았지만, 복도에서는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가방을 챙겨 나오면 의자 끄는 소리와 지퍼 잠그는 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시끌벅적하게 장난을 칠 나이였지만, 늦은 시간의 아이들은 조용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신발을 신다가 잠시 벽에 기대었고, 어떤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도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공부가 싫어서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남아 있던 아이들은 해야 할 일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시작된 하루가 학원까지 너무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뛰어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을 마시면서도 의자에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 팔을 올린 채 멍하니 창밖만 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내는 아이도 있었지만 재미있게 뭔가를 보는 표정보다는 습관처럼 화면을 넘기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몇 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시 문제집을 펴고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한 학생에게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잠을 많이 못 잤다고 했습니다. 학교 숙제와 학원 과제를 마치고 나니 밤이 늦었고, 다음 날에는 다시 일찍 일어나야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생활이 매일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성적보다 하루 리듬이 먼저 보였습니다

학생들이 의외로 가장 힘들어하던 생활 패턴은 공부 자체보다 쉬지 못하고 이어지는 하루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이동하고, 학원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남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식사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잠드는 시간도 자꾸 늦어졌습니다.

잠이 부족한 날은 평소 밝던 아이도 말수가 줄었습니다. 아침이나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학생은 수업 중간부터 힘이 빠져 보였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었지만, 실제로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날에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많이 피곤하지?” 하고 먼저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별것 아닌 말인데도 아이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자기가 힘든 것을 누군가 알아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현장에서 오래 보다 보니 자세보다 먼저 보이던 습관들”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김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났습니다

김포 신도시에서 성장기 학생들을 만나던 때에도 생활 리듬이 흔들린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모님은 자세나 키 이야기를 먼저 꺼냈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아이가 몇 시에 자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하루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비 오는 날 부모님과 함께 들어온 한 학생은 의자에 앉자마자 계속 하품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요즘 늦게 잔다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였습니다. 특별한 문제라기보다 학교와 학원 일정이 겹치면서 생활 전체가 뒤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학생을 볼 때 자세만 보지 않게 됐습니다. 어깨가 내려가 있는지보다 눈빛이 살아 있는지, 의자에 어떻게 앉는지보다 오늘 식사를 했는지, 몇 시간이나 잤는지를 먼저 궁금해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했던 평범한 하루

수업이 끝난 뒤 부모님과 함께 나가던 학생들의 뒷모습도 많이 기억납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부모님이 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음 날 일정을 다시 확인하는 가족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짧게 대답했습니다. 공부를 하기 싫다는 표정보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실함도 쉴 시간이 있어야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라톤을 하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 빠르게 달리는 사람보다 자기 호흡을 지키며 중간중간 힘을 조절하는 사람이 더 오래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성장기 학생들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계속 앞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늦은 밤 불이 켜진 학원 건물을 보면 아직도 문제집보다 먼저 아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던 모습, 졸린 눈으로 부모님 차를 기다리던 얼굴 말입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특별한 비결이 아니라, 제때 밥을 먹고 조금 일찍 잠들 수 있는 평범한 하루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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