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현장에서 몸보다 먼저 무너지는 부분을 느꼈던 순간

출발선 옆에서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있는데, 강바람이 생각보다 차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해가 다 올라오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강변 둔치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말은 적게 해도 몸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친구와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진행자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고, 급수대 쪽에서는 봉사자들이 종이컵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리도 가벼웠고, 잠도 평소보다 괜찮게 잤습니다.

처음 몇 킬로미터는 분위기가 밀어줬습니다

출발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묘한 힘이 생깁니다. 혼자 뛰면 금방 느껴질 숨소리도 사람들 발소리 사이에 섞이면 덜 힘들게 느껴집니다. 처음 몇 킬로미터는 저도 그 분위기에 살짝 취해 있었습니다.

옆에서 뛰는 사람들의 숨소리, 강가를 따라 흔들리는 응원 손짓, 물을 준비하던 봉사자들의 바쁜 움직임까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라톤 현장은 늘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기록을 보러 오고, 누군가는 완주만 하자고 마음먹고 오고, 또 누군가는 친구 따라 나온 것처럼 웃으며 서 있습니다.

다리는 괜찮은데 마음이 먼저 흔들리던 순간

이상한 건 중간쯤부터였습니다. 다리가 못 움직일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고, 숨이 턱 막혀서 멈춰야 할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자꾸 그만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시계를 자꾸 봤습니다. 몇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다음 급수대는 어디인지, 언제쯤 끝나는지만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몸은 아직 앞으로 갈 수 있는데 마음은 벌써 뒤로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마라톤 현장에서 몸보다 먼저 무너지는 부분은 다리나 허리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옆에서는 저보다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분이 묵묵히 뛰고 있었습니다. 어떤 참가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도 걸음을 크게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괜히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갈 수 있는데, 마음속에서 먼저 포기할 이유를 찾고 있었으니까요.

물 한 컵에 정신이 돌아오던 때

급수대 근처에서 잠깐 걸었습니다. 종이컵을 받아 들고 물을 마시는데, 봉사하던 학생이 웃으면서 “힘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주 흔한 말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귀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마라톤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절뚝이기보다 표정부터 먼저 내려앉습니다. 눈빛이 흔들리고,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손에 든 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출발합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사람을 앞으로 보내는 힘이 근육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몸이 아무리 준비돼 있어도 마음이 먼저 꺾이면 걸음이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몸은 조금 힘들어 보여도 마음이 붙어 있으면 한 걸음은 더 나가더라고요.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대치동에서 늦게까지 남아 있던 학생들에게 공통으로 보였던 모습”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학생들 모습과 이상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날 마라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대치동 학생들을 보던 때와 닮아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남아 있던 학생들도 몸은 피곤해 보였지만, 손은 계속 문제집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포 신도시에서 성장기 학생들을 관리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의자 끝에 앉아 몸을 앞으로 접고 있는 모습은 단순히 자세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 피곤해도 버텨야 한다는 생활 리듬이 몸에 같이 묻어 있었습니다.

카이로프랙틱이나 생활습관 관리를 접하고 나서는 이런 장면들이 더 다르게 보였습니다. 몸이 먼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생활의 흐름이 먼저 흔들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의 자세나 걸음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결승선보다 선명했던 강바람

그날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도 물론 기억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더 선명한 건 중간에 잠깐 멈춰 서서 강바람을 맞던 장면입니다. 숨을 고르면서 종이컵을 손에 쥐고, 멀리 뛰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 몇 분이 아직도 오래 남아 있습니다.

기록표에 남는 숫자보다 그때 마음속에서 오가던 말들이 더 진하게 남았습니다. “여기서 그만할까”, “조금만 더 가볼까”, “아직은 움직일 수 있지 않나” 같은 생각들이 계속 왔다 갔다 했습니다.

마라톤 현장에서 몸보다 먼저 무너지는 부분을 느꼈던 순간은, 제가 제 몸만 본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이 어떤 식으로 핑계를 만들고, 또 어떤 작은 말 한마디에 다시 움직이는지를 본 시간이었습니다. 요즘도 새벽 강가를 지나갈 때면 그때 종이컵에 담긴 물맛과 차가운 바람이 먼저 떠오릅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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