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흐름은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꼈던 경험
학생이 의자에서 일어날 때 잠깐 멈추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적이 있습니다.
김포 한강신도시 사무실에서 성장기 학생들을 만나던 때였습니다. 처음 오는 날에는 학생보다 옆에 앉아 있는 부모의 표정이 더 급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빨리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학생도 처음에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세를 바꿔보자고 하면 곧바로 움직이기보다 잠깐 멈췄다가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옆 의자에 앉은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과 제가 그날 속도를 조금 늦췄던 장면은 남아 있습니다.
빨리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
저 역시 처음부터 느긋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무엇인가를 해주고 나면 금방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학생이나 부모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학생들을 계속 만나보니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지나고 나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날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처음보다 움직임이 조금 자연스러워 보였고, 다음에 왔을 때는 다시 비슷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혼자 생각했습니다.
내가 너무 천천히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방향을 잘 보고 있는 건가.
하지만 학생에게 이것저것 더 시키기보다는 그날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게 하고 지켜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무실 안의 짧은 시간만 봐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학생을 계속 보다 보니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모습이 하나씩 보였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 몸을 돌릴 때의 움직임 같은 아주 평범한 장면이었습니다.
크게 달라졌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작은 모습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웠습니다.
그때부터 사무실에서 함께 있는 짧은 시간만 보고 학생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생에게는 사무실 밖에서 보내는 훨씬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앉아 있는 시간도 있었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반복하는 움직임과 습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학생이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먼저 들으려고 했습니다. 특별한 방법을 더 이야기하기보다는 집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평소 모습은 어떤지를 듣는 시간이 점점 중요해졌습니다.
대치동에서 늦은 밤 혼자 사무실을 정리하며 하루를 되짚던 기억을 적었던 “대치동 사무실에서 조용한 밤마다 느꼈던 변화”와도 이런 마음은 조금 이어져 있습니다. 낮에는 지나쳤던 작은 장면이 조용해진 뒤에야 다시 떠오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비슷한 흐름을 느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는 제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경험도 조금 영향을 줬습니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래 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짧게 뛰다가 힘이 들면 속도를 줄였습니다. 다시 괜찮아지면 조금 뛰었습니다.
그렇게 반복한다고 하루아침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전혀 다른 상태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변화도 그날 갑자기 생겼다기보다 그 전에 지나온 시간이 조금씩 쌓인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을 볼 때도 비슷했습니다. 한 번의 모습만 보고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보이는 장면 하나가 그 학생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차이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김포 사무실에서 학생을 오래 보다 보면 부모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이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자세히 바라보던 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 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역시 예전처럼 매번 큰 차이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전보다 덜 망설이는지, 움직일 때 조금 자연스러운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모습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지를 그냥 계속 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의 흐름이라는 말을 제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무언가 한 번 하고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식으로 생각하기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이어지는 모습에 더 가까웠습니다.
생활하는 자세도 하루의 일부였고 움직이는 습관도 하루의 일부였습니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만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여러 번 느꼈습니다.
학생이 돌아간 뒤 생각나던 작은 장면
마지막 학생이 돌아가고 나면 사무실은 금방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사용했던 자리를 정리하고 의자를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낮에는 다음 일정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그때 다시 떠오르곤 했습니다.
처음 왔던 날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잠깐 멈칫하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시간이 지난 뒤 조금 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모습도 같이 떠올랐습니다.
그 차이는 다른 사람이 보면 별것 아니라고 할 정도로 작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같은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런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눈앞에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시간을 조금 길게 보는 쪽으로 제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김포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의자를 제자리로 밀어 넣던 저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지만 학생이 처음 들어왔던 날의 모습과 그날의 모습을 가만히 비교하고 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몸의 흐름은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보이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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