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사무실에서 조용한 밤마다 느꼈던 변화

문을 닫으려고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도 바로 불을 끄지 못하던 밤이 있었습니다.

대치동 우리들건강지킴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밖에서는 학원을 마친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도로 가장자리에는 아이를 기다리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편의점 앞에는 가방을 멘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늦은 시간인데도 거리는 환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안쪽으로 한 걸음만 들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낮 동안 누군가 앉아 있던 의자는 비어 있었고, 정리해 둔 공간에는 사람 대신 조용한 공기만 남았습니다.

밖은 그렇게 바쁜데 내 공간은 고요하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 많은 동네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치동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솔직히 기대가 컸습니다.

학원가에는 늘 학생이 많았고 부모들도 많이 오갔습니다. 거리를 걷기만 해도 사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알려지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운영해보니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학생들의 하루는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학원으로 이동했고, 한 곳이 끝나면 또 다른 수업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관심은 있어도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좋은 것 같기는 한데 시간이 없어요.”

이 말을 몇 번 듣고 나면 저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일에 하지 못한 공부나 가족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조금만 더 열심히 알리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빈 예약표를 바라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책상 위에 수첩을 펴놓았습니다.

다음 날 예약 시간을 살펴보고, 빈칸이 많으면 괜히 앞장을 다시 넘겨보기도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날짜를 보면서 지난주는 어땠는지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바쁘게 움직이느라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조용한 공간에서 마음이 더 솔직해졌습니다.

전단지 문구를 바꿔볼까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이곳을 알 수 있을지도 고민했습니다. 간판은 잘 보이는지, 설명이 어렵지는 않은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현수막 붙이던 시절 직접 느꼈던 현실적인 운영 이야기”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그때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운영을 오래 해보니 사람들의 생활 시간 자체가 이미 너무 빽빽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이 괜찮다고 해서 상대가 당장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과 나눈 짧은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허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을 닫기 직전 늦게 찾아오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왔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그대로 남아 있던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몸 이야기에서 시작해 회사 이야기나 집안 이야기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특별한 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돌아갈 때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네요.” 하고 웃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마음이 조금 풀렸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몇 명이 왔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숫자가 비어 있으면 마음도 같이 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장사를 한다는 것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그 무렵부터 생겼습니다.

대치동의 밝은 밤과 내 사무실의 조용한 밤

마지막 불을 끄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대치동은 여전히 밝았습니다.

학원 간판은 환했고 학생들은 가방을 메고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아이를 태우려는 차들이 천천히 앞으로 밀려가고, 길 건너 음식점에서도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가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그 풍경을 잠깐 바라봤습니다.

조금 전까지 혼자 있던 사무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차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내 공간은 조용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모두 내 손님이 되는 것은 아니었고, 열심히 준비했다고 해서 원하는 시간에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공간을 오래 지키면서 사람 한 명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생활 시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불을 끄기 전 잠깐 머물던 시간

밤마다 사무실을 정리하는 순서는 비슷했습니다.

의자를 제자리로 넣고, 책상 위 물건을 정리하고, 창문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불을 하나씩 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등 하나는 바로 끄지 않았습니다.

그 불 아래에서 하루를 잠시 되돌아봤습니다. 사람이 적게 왔다고 속상했던 날도 있었고, 짧은 대화 하나 때문에 마음이 편해진 날도 있었습니다.

대치동 시절을 떠올리면 화려한 학원 간판보다 그 마지막 불빛이 더 선명합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작은 사무실 안에서는 제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많이 찾아오는 것만 바라보던 마음에서, 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가던 시간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계단을 내려오면 밖의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렸습니다. 학생들의 발걸음, 차 문 닫히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날도 사무실은 조용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는 누군가와 나눈 짧은 말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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