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서 고객들과 같이 밥 먹으며 들었던 생활 고민들
사무실에서 밥 냄새가 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몇 분이 그냥 자리에 남아 있던 날이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저도 아직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같이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찌개를 가져오기도 했고, 김밥 몇 줄에 국수를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상은 아니었습니다. 작은 식탁 위에 반찬통 몇 개와 종이컵, 수저가 뒤섞여 놓였고, 따뜻한 국물에서 김이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음식 이야기만 했습니다. 김치가 괜찮다, 다음에는 다른 집에서 시켜보자, 오늘 국물이 좀 짜다는 식의 가벼운 말이 오갔습니다. 그런데 밥을 몇 숟가락 먹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른 이야기가 하나씩 나왔습니다.
상담 자리에서는 안 나오던 이야기
관리받으러 왔을 때는 보통 어디가 불편한지부터 이야기했습니다. 어깨가 무겁다거나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는 말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밥상 앞에서는 순서가 달랐습니다.
한 분은 남편이 늘 늦게 퇴근해서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웃으면서 말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혼자 아이 밥을 챙기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은 아이가 학교가 끝난 뒤 학원을 몇 군데 돌고 집에 오면 밤이 너무 늦어진다고 걱정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아이 시간을 맞추느라 자기 식사는 대충 때우는 날이 많다고 했습니다.
“애는 챙겨야 하니까 먹이는데 저는 그냥 아무거나 먹어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얼굴에는 피곤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생활이란 게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피곤함과 부모의 피곤함이 서로 이어져 있었고, 식사 시간 하나만 봐도 그 집의 하루가 어느 정도 보였습니다.
김포 신도시 사람들의 현실적인 걱정
김포 한강신도시는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새 아파트가 계속 올라가고 상가도 하나씩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활기찼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래 살다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분들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고, 저녁 늦게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출근길부터 이미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지친다고 했습니다.
집을 마련한 기쁨도 잠시였고 대출 이야기가 따라왔습니다. 아이가 크면 교육비 걱정이 붙었고,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또 다른 걱정이 생겼습니다.
밥상 위에는 찌개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사 이야기, 집값 이야기, 아이 이야기, 부모님 걱정이 같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런 자리에서는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사는 게 다 비슷한가 봐요.”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웃었고, 저도 같이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그 잠깐의 조용함이 이상하게 편했습니다. 누구도 뭔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서로의 사정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피곤하다는 말 뒤에 붙어 있던 것들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조금 늦게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요즘 너무 피곤해요.”라고 말할 때 그 피로가 꼭 몸을 많이 써서 생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늦은 퇴근이 있었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이 문제도 있었고, 돈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생활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인 줄 알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성장기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피곤해 보인다고 해서 학생만 따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를 기다리느라 저녁을 늦게 먹고, 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느라 늦게 자고, 아침에는 온 가족이 시간에 쫓겼습니다.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보던 시절에도 비슷했습니다. 공부 이야기만 듣다 보면 점수와 수업 시간이 전부인 것 같았지만, 조금 더 오래 지켜보면 아이의 하루는 식사와 잠, 이동 시간, 부모의 생활까지 모두 이어져 있었습니다.
김포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그런 생활을 훨씬 가까이 보여줬습니다.
밥 한 끼가 사람을 편하게 만들 때
마라톤 대회에서 봉사할 때도 사람들은 함께 먹는 시간에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바쁠 때는 각자 맡은 일만 했지만, 일이 조금 정리되고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하면 그제야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누가 먼저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왜 일을 바꿨는지, 요즘 무엇이 힘든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김포 사무실에서도 그랬습니다.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보다 같은 반찬을 집어 먹고 있을 때 사람들이 더 편하게 말했습니다. 상담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때는 관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밥을 같이 먹는 동네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전까지 가족 이야기를 하며 속상해하던 분도 밥을 다 먹으면 빈 그릇을 하나씩 모았습니다. 누군가는 식탁을 닦았고, 다른 사람은 남은 반찬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나서면서 다시 웃었습니다.
“잘 먹고 갑니다.”
그 짧은 인사를 듣고 나면 저도 오후 일을 준비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시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생기는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습니다.
화려한 기억보다 밥 냄새가 먼저 남았습니다
김포에서 지낸 시간을 떠올리면 큰 행사나 특별한 날보다 이상하게 작은 식탁이 먼저 생각납니다.
찌개 뚜껑을 열었을 때 올라오던 김,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종이컵, 이야기하다가 잠깐 멈춘 숟가락, 다 먹고 난 뒤 겹겹이 쌓아놓은 빈 그릇 같은 것들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누구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로 출퇴근하느라 힘든 사람도 있었고, 아이 때문에 마음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장사가 걱정되는 저도 있었습니다. 각자 사정은 달랐지만 하루를 버티느라 애쓰는 것은 비슷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때의 점심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 이야기를 들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오래 현장에 있다 보니 몸보다 먼저 그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를 보게 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가끔 따뜻한 찌개 냄새를 맡으면 김포의 어느 오후가 떠오릅니다. 창밖에는 신도시 상가가 보이고, 작은 식탁에는 반찬 몇 가지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고 자기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밥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정도는 함께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장면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정도로도 충분했던 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