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인 줄 알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며칠만 푹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웃으면서 말했고, 누군가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면서 말했습니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얼굴을 보면 하루가 만만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녁 시간이 그랬습니다. 상가 간판에 불이 하나둘 들어오고 복도에서 들리던 발소리도 뜸해질 무렵이면 하루 일을 마치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부터 힘이 빠져 있는 분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 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단순히 일을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루 이틀 쉬면 괜찮아질 피로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피곤하다는 말 뒤에 있던 하루

조금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정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점심도 자리에서 간단히 먹고 화장실 갈 때 말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쉬어야 하는데 휴대전화를 보다가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잠든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또 달랐습니다. 아침부터 식사를 챙기고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가 돌아오면 다시 학원 시간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식사는 대충 넘기면서도 아이 밥은 꼭 챙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 말을 하면서 웃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그 웃음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자기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것이 더 힘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피곤하다’는 말이 참 넓은 말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이 부족해서 피곤한 사람도 있었고, 오래 앉아 있어서 무거운 사람도 있었고, 마음 쓸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피곤함은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성장기 학생들을 만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보던 때나 김포에서 관리하던 때나 저녁 늦은 시간에 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비슷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의자 등받이에 기대거나, 신발을 벗으면서부터 하품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옆에서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해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에게 하루를 물어보면 답이 조금씩 나왔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난 뒤 학원을 두세 군데 돌고, 집으로 돌아가 숙제를 하면 밤이 늦어진다고 했습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그 시간이 더 늦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생활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 이렇게 해요.”

그 한마디가 오히려 마음에 걸렸습니다. 피곤한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냥 당연한 하루가 된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오래 보다 보면 자세만 보고 끝내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깨가 앞으로 말려 있는 모습보다 전날 몇 시에 잤는지가 더 궁금할 때가 있었고, 몸이 축 처져 있는 모습보다 저녁을 제대로 먹었는지가 먼저 떠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성장기 학생들을 보며 생활 리듬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와도 이어지는 기억입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피로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제 몸으로 피로의 차이를 느낀 것은 마라톤을 시작한 뒤였습니다.

처음 달리기를 할 때는 조금만 오래 뛰어도 다리가 묵직했습니다. 하프나 긴 거리를 뛰고 난 날에는 계단을 오르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피로는 쉬고 나면 느낌이 달랐습니다.

잘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하루 이틀 몸을 편하게 두면 다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반대로 일이 계속 겹치고 잠이 부족하던 시기에는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몸이 무거웠습니다. 사무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허리를 한번 펴야 했고, 아침에 눈을 떠도 전날의 피곤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라톤 대회 봉사를 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 거리를 달린 참가자들은 분명 힘들어했지만, 완주하고 난 뒤의 표정에는 이상하게 생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반대로 평소 생활에 지쳐 찾아온 사람들은 많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얼굴부터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 차이를 보면서 저는 피로를 한 가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몸보다 먼저 생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오래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질문하는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디가 불편한지부터 물었다면 나중에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먼저 묻게 됐습니다.

“요즘 잠은 몇 시쯤 주무세요?”

“식사는 제때 하세요?”

“하루에 좀 걷기는 하세요?”

이런 평범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몸 이야기보다 생활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 일이 밀려 있다는 이야기, 아이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 장사가 안 돼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제가 그 피로의 이유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몸에는 그 사람이 며칠 동안 살아온 시간이 어느 정도 묻어 있다는 느낌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던 날, 잠을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던 밤, 끼니를 거른 오후,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던 시간들이 하나씩 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늦은 저녁 사무실에 남아 있던 표정들

사무실에서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나면 조용히 의자를 정리했습니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냉장고 소리와 복도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김포 상가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불이 켜진 식당도 있었고 이미 간판을 끈 가게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문득 그날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냥 좀 피곤합니다.”라고 말하던 직장인, 아이를 기다리면서 잠깐 눈을 감았던 어머니,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의자에 기대던 학생까지.

예전의 저는 피로라는 말을 너무 간단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제 몸으로도 달리기와 일을 반복하다 보니, 그 짧은 말 속에 꽤 많은 하루가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요즘도 누군가 “요새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예전처럼 바로 무슨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습니다.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먼저 듣게 됩니다.

김포 사무실 창문에 비치던 늦은 밤 간판 불빛과 의자에 기대 잠시 쉬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그저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얼굴들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저마다 하루를 힘겹게 끌고 온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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