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학생들을 보며 생활 리듬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
매미 소리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초여름 저녁이었습니다. 비가 막 그친 뒤라 바깥 공기는 조금 눅눅했고, 사무실 안에는 상담 끝난 뒤의 조용한 기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학생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계속 하품을 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부모님은 아이 얼굴을 한 번 보고, 다시 제 쪽을 바라봤습니다. 특별히 큰 이야기를 나눈 날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졸린 눈과 축 처진 어깨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표정에서 먼저 보이던 하루
성장기 학생들을 보다 보면 자세보다 먼저 얼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몸이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잠을 잘 잔 아이는 눈빛이 조금 다르고, 하루 종일 피곤했던 아이는 앉는 순간부터 몸이 의자에 푹 꺼집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그런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처음 학원에 들어올 때는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웃던 아이들이 밤이 깊어지면 말수가 줄었습니다. 형광등 아래에서 문제집을 펼쳐 놓고 잠깐 눈을 감는 학생도 있었고, 복도 창문에 기대어 밖을 멍하니 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부량이 많아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장기 학생들을 더 가까이 보면서,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해서 피곤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의 리듬이 흔들리면 몸도 같이 흔들렸습니다.[
일정한 아이들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여러 학생을 보다 보면 성적보다 생활 흐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잠드는 시간이 비교적 일정한 아이들은 상담 자리에서도 표정이 조금 안정돼 보였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시험 기간도 있고, 학교 일정도 있고, 집집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그래도 생활 리듬이 어느 정도 잡혀 있는 학생들은 학원에 와서도 덜 허둥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말투도 급하지 않고, 앉아 있는 자세도 조금 덜 무너졌습니다.
반대로 밤늦게까지 휴대전화를 보거나 주말마다 잠자는 시간이 크게 달라지는 아이들은 월요일에 유난히 힘들어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키나 자세 이야기를 하러 오셨지만, 차분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수면과 식사, 움직이는 시간이 더 먼저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김포에서 더 선명하게 느낀 부분
김포 신도시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는 성장기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신도시가 한창 자리 잡던 때라 부모님들도 바빴고, 아이들도 학원과 학교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가방을 멘 학생들이 뛰어 들어오고, 부모님들은 주차 걱정과 시간 걱정을 같이 안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부모님들이 자주 묻던 것은 키, 자세, 균형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활이 불규칙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급하게 먹고, 저녁에는 학원 끝나고 늦게 먹는 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솔직합니다. 피곤하면 바로 얼굴에 나타나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눈빛부터 살아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는 학생을 볼 때 키나 자세만 보지 않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같이 보게 됐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앞서 정리했던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보였던 생활 패턴”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부분입니다.
나도 리듬이 무너지면 바로 느꼈습니다
사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원 운영을 하던 시절에는 밤늦게까지 상담하고, 새벽에 교재를 만들고, 다시 아침 일을 준비하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몸이 피곤해도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흐트러지면 다음 날 달릴 때 바로 티가 났습니다. 다리만 무거운 게 아니라 마음도 먼저 가라앉았습니다. 전날 늦게 자고 제대로 먹지 못한 날은 출발 전부터 몸이 어딘가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라톤 봉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봤습니다. 체력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리듬이 무너지면 중간에 표정이 먼저 어두워졌습니다. 반대로 빠르지는 않아도 자기 호흡을 지키는 사람은 끝까지 꾸준히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하루가 몸에 남았습니다
성장기 학생들을 보며 생활 리듬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거창한 이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늦은 저녁 의자에 기대어 하품하던 학생, 복도 창문에 기대어 말없이 서 있던 아이, 월요일마다 유난히 무거운 얼굴로 들어오던 학생들이 하나씩 기억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저녁 무렵 학교 앞을 지나가면 가방을 멘 아이들이 보입니다. 친구들과 웃으며 걷는 아이도 있고, 버스정류장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예전 사무실 창문 너머로 들리던 매미 소리와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같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말보다 하루를 너무 흔들리지 않게 보내는 작은 힘일지도 모릅니다. 잘 자고, 제때 먹고, 가끔 몸을 펴고, 너무 늦게까지 버티지 않는 것. 그런 평범한 흐름이 학생들의 얼굴과 자세에 조용히 남는다는 걸 현장에서 천천히 배웠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